내 곁에 두어야 할 사람, 떠나보내야 할 사람
— 그 경계를 흐릿하게 살아온 당신에게
40년간 상담실에서 마주한 수천 명의 삶이 가르쳐준 것들
상담실에 처음 오는 분들 중 상당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그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놀랍도록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어요. 대부분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고, 그 관계가 조금씩 자신을 갉아먹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챈 경우였습니다.
최근 보만 스님의 강연 내용을 접하게 됐는데, 불교적 언어로 담아낸 그 이야기가 제가 수십 년간 임상에서 체감한 내용과 정말 놀라울 정도로 겹쳐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나의 출발점 삼아, 조금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관계의 방향은 결국 내가 느끼는 '무게감'이 결정한다
악취가 배는 건 노력이 필요 없다
보만 스님이 언급하신 개념 중 '훈습(薰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속한 환경으로부터 물드는 법칙이라는 뜻이에요.
불란집에 잠깐 들어갔다 나와도 연기 냄새가 배듯,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에 말 그대로 '물듭니다'.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신경과학적으로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간의 뇌에는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고 내면화하도록 설계된 세포예요. 우리가 화난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긴장되고, 웃음 많은 사람과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풀리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반복되면, 이것은 더 이상 일시적인 기분 변화가 아니라 성격의 일부로 고착됩니다.
"나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을 계속 곁에 둔다는 것은,
나도 그 사람의 악취에 물드는 것입니다.
재빨리 피해야 합니다."
— 보만 스님
저는 이 말에 임상의로서 덧붙이고 싶습니다. 피하는 것은 도망이 아닙니다. 자기 보호입니다. 그것을 '이기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이야말로 정신건강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예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보완점이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재빨리 피하는 것'이 맞는 경우도 있지만, 상담 현장에서는 '피하는 것 자체가 패턴이 된 사람'도 많습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관계를 끊어버리는 방식이 습관화되면, 결국 진짜 필요한 관계조차 잃게 됩니다. 핵심은 이 관계가 나를 반복적으로 소진시키는가를 판단하는 것이지, 불편함이 생길 때마다 회피하는 게 아닙니다.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을 고르는 법
"그럼 어떤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저는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 끝났을 때, 당신은 더 가볍습니까, 아니면 더 무겁습니까?
대화가 끝났는데 어깨가 처지고,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운 느낌이 든다면 — 그 관계를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심지어 다투더라도 대화가 끝났을 때 '뭔가 정리된 느낌', '생각할 것을 줬다는 느낌', '나를 진지하게 대해줬다는 느낌'이 든다면 — 그 사람은 당신 삶에 꼭 필요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내 곁에 둘 사람인지 확인하는 7가지 기준
- 그 사람과 있을 때, 나는 내 말을 검열하지 않아도 된다
- 그 사람은 내가 틀렸을 때, 기분 좋게 알려줄 수 있다
- 함께한 시간이 끝난 뒤, 나는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 그 사람의 성공이 진심으로 기쁘게 느껴진다
- 그 사람이 나의 실패를 무기로 쓰지 않는다
- 그 사람은 '내가 맞아'보다 '우리가 어떻게 할까'를 먼저 말한다
- 그 사람은 나를 바꾸려 하지 않고, 내가 더 나아지도록 북돋는다
성공과 실패 — 우리가 잘못 배운 두 단어
보만 스님이 지적하신 '진지함의 함정'은 정신건강 영역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입니다.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면 삶이 '목표의 연속'이 되고, 목표는 필연적으로 성패(成敗)라는 이분법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40년 동안 상담실에서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원하는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잡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산 사람들. 그런데 그들이 상담실 의자에 앉아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저 사실 살면서 한 번도 진짜 쉬어본 적이 없어요."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목표 하나를 달성하면 곧바로 다음 목표가 생깁니다. 그 사이클이 멈추는 순간은 오지 않아요. 목표 달성을 성공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다 생을 마감하는 셈입니다.
목표의 연속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은 항상 미래의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실패는 어떻게 봐야 할까
스님의 말씀 중 제가 가장 공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서쪽으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발이 아니라, 멈추는 용기라는 것이었죠.
제 임상 경험에서도 이건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우리가 흔히 '실패'라고 부르는 순간이 실제로는 방향 전환의 기회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문제는 그 순간에 '아, 이 방향이 아니구나'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서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달려간다는 거예요. 심리학 용어로는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부릅니다.
지금 힘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멈춰서 있다면, 그것이 방향을 찾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것보다, 멈추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훨씬 더 용기 있는 일입니다.
이 강연에서 내가 아쉬웠던 한 가지
보만 스님의 이야기는 분명히 울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스님은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재빨리 피하라'고 하셨고, 동시에 '누구도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말은 일상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족 관계에서요.
부모, 형제, 오래된 배우자 — 이들은 때로 나를 소진시키지만, '재빨리 피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 경우에 '피하라'는 조언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거리두기가 아니라 경계 설정(boundary setting)입니다. 그 사람을 삶에서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내 감정과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내가 정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불교적 관점이 조금 부족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출가 수행자의 삶과 현대 직장인, 육아 중인 부모의 삶은 다른 조건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스님의 지혜를 '원칙'으로 삼되, 실행 방식은 각자의 삶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삶을 잘 산다는 것
40년을 이 일을 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잘 산 삶이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룬 삶이 아닙니다.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걸어온 삶, 그리고 그 여정에서 진심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곁에 있었던 삶입니다.
성공은 당신 외부에 있는 어떤 지점이 아닙니다. 당신이 오늘 어떤 감각으로 살고 있느냐, 그리고 당신 곁에 누가 있느냐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내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을 잘 고르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인생 전략은 없습니다. 그것이 의료 현장에서, 수천 번의 상담을 통해 제가 배운 가장 단순하고 가장 확실한 진실입니다.
그 사람이 당신의 선지식(善知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당신 자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