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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잃어버린 사람들 — AI에게 오늘 저녁을 맡긴 날

by TwoBuyGetOneFree 2026. 4. 26.

선택을 잃어버린 사람들 —
AI에게 오늘 저녁을 맡긴 날

직접 찾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직접 찾는 게 "비효율"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대하여

 

스마트폰으로 AI를 사용하는 현대인의 일상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탐색과 결정을 위임하는 시대가 왔다

지난 주 금요일 밤, 친구한테서 카톡이 왔다. "야, 토요일에 뭐 먹을 만한 데 아는 곳 있어?" 나는 핸드폰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AI를 열었다. "강남역 근처, 파스타, 1인 3만 원 이내, 분위기 있는 곳." 10초가 채 안 돼서 세 곳이 나왔고, 나는 그걸 그대로 복붙해서 보냈다.

보내고 나서 핸드폰을 내려놓는데, 이상하게 잠깐 멈췄다.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그냥 네이버 지도 켜서 별점 보고 고르면 됐을 텐데. 예전엔 그게 당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직접 찾고 비교하는 행위 자체가, 낭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걸 그 순간에야 처음으로 인식했다.

귀찮아서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처음엔 나도 그냥 내가 게을러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무리 봐도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헬스장은 꼬박꼬박 가고, 요리도 직접 하고, 주말엔 책도 읽는다.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 스스로 잘 안다. 그런데 유독 "정보를 탐색하고 비교해서 결정하는 일"에서만은, 이상하게 체력을 쓰기가 싫어졌다.

에피소드

두 달 전에 노트북을 새로 사야 했다. 유튜브 리뷰 영상만 스무 개가 넘게 봤는데, 볼수록 머리만 아팠다. 결국 AI한테 "영상 편집이랑 업무용으로 쓸 노트북, 예산 200만 원"이라고 던졌더니 세 가지로 좁혀줬다. 그걸 보고 고른 게 지금 이 노트북이다. 예전엔 이런 식의 구매가 조금 찜찜했는데, 지금은 "그게 맞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해보니, 이유가 꽤 명확했다. 선택지가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5년 전만 해도 노트북 살 때 고려할 브랜드가 대여섯 개였다면, 지금은 브랜드마다 모델이 수십 가지고, 모델마다 스펙 조합이 또 수십 가지다. 배달앱을 열면 반경 1km 안에 치킨집이 30개다. 유튜브에서 뭔가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수만 개가 뜬다.

예전엔 선택지가 적어서 직접 비교하는 게 가능했다. 지금은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비교 자체가 전문적인 노동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 노동을 AI한테 넘기기 시작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비효율이라는 감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 대신 찾아줘" —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감각이 나만의 것인지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니었다. 전혀.

주변 풍경

회사 동료 한 명은 출근길마다 이어폰 끼고 AI한테 "오늘 뉴스 핵심만 요약해줘"라고 말을 건다고 했다. 동생은 제주도 여행 3박 4일 일정을 AI한테 통째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AI를 쓰진 않지만, 매번 "이거 네가 좀 찾아줘"를 나한테 위임하신다. 위임의 대상이 AI냐 사람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완전히 같다.

직접 찾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행위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은 욕구. 이게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가장 공통된 심리 같다. 그리고 이건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정보의 양이 인간의 처리 속도를 이미 초과해버린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가 게을러진 게 아니라, 환경이 먼저 바뀐 거였다.

카페에서 노트북과 핸드폰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긴 사람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결정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가 된다

문제는 위임이 아니라, 위임하는 줄 몰랐다는 것

그런데 솔직히, 불편한 지점도 있다.

에피소드

AI가 추천해준 그 파스타집에 친구랑 같이 갔는데, 면이 불었고 소스도 짰다. 분위기도 사진이랑 달랐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어디서 찾아온 거야?"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AI라고 말하기가 뭔가 이상하게 멋쩍었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패도, 아쉬움도, 어딘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찾아서 갔다가 별로면 "아, 내 눈이 낮았네. 다음엔 더 잘 찾아봐야지" 하고 넘어갔다. 기억도 더 오래 남고, 다음 번엔 더 잘 고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냥 AI 탓을 하고 끝난다. 이게 편리함인지, 아니면 뭔가를 천천히 잃어가고 있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더 이상한 건,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누군가 "앞으로 모든 결정을 AI한테 맡길 거예요?" 하고 물어봤다면, 나는 "아니죠, 중요한 건 직접 해야죠"라고 당연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근데 실제로는 이미 꽤 많은 것들을 맡기고 있었다. 그것도 내 기준에서 나름 '중요한 것들'을.

편리함 뒤에 남는 것 — 아직 답은 없다

요즘 나는 가끔 일부러 직접 해보는 연습을 한다. 저녁 메뉴를 AI한테 묻지 않고 냉장고 열어서 있는 재료로 스스로 생각하기. 여행지를 추천 목록 없이 지도 펴놓고 내 감으로 골라보기. 카페를 찾을 때 별점 필터 없이 그냥 길 걷다가 끌리는 데 들어가기.

하다 보면 오래 걸리고, 결과도 별로일 때가 있다. 근데 이상하게 그 과정이 좋다. 내가 고민해서 결론을 냈다는 감각 자체가, 요즘 들어 꽤 귀한 경험이 됐다. 그냥 결과를 받아서 쓰는 것보다, 틀리더라도 내가 생각한 것이 어딘가 더 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AI가 나쁜 게 아니다. 정말 편리하고, 잘 쓰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 근데 나는 지금 이 시대가 '위임의 시대'라는 걸 인식하면서 살고 싶다. 편의를 위해 위임하는 건 좋은데, 내가 위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면 — 그건 편리함이 아니라 그냥 관성이니까.

식당 하나 고르는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는 매일 선택을 위임하고 있다. 그 위임들이 쌓이면, 어느 날 문득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르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AI가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잃는 게 좀 두렵다.

— 그러니까, 오늘 저녁은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아직 못 정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참고 자료
  • Razorfish, 5 Consumer Trends Rewriting the Brand Playbook in 2026 (2026.03) — razorfish.com
  • Experian, 2026 Consumer Insights: Trends Marketers Should Know (2026.02) — experian.com
  • Adweek / Suzy, Prompt Shift: Top Consumer AI Trends for 2026 (2026.01) — adweek.com
  • Netguru, Consumer Behavior Trends 2026 (2026.03) — netguru.com
  • Glimpse, Top Trends of 2026meetglimp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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